심상정 - 87 백기완의 마지막 페이지

87년 백기완 이후의 긴 여정을 이제 클로징할 무렵에 심상정은 서 있다.

진보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라는 기치 아래, 어렵고도 어렵게 버티며, 숱한 이들이 왔다가 뿔뿔이 갈 길 찾아가며 때로는 전향하고 때로는 굴복하고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그래도 그 지향을 나름 지키고 확장하려 남아서 애썼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도저히 될 길이 아닌 것도 같은, 그 불가능할 것 같은 길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는 헤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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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백기완의 눈물어린 호소, 
92년 처참했던 민중당의 실패, 
92년 백기완의 예정됐던 고전, 
97년 국민승리21 권영길의 미미함, 
02년,04년 권영길과 민노당의 잠깐의 선전, 
07년 권영길의 익숙한 실패,
08년 민노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고배,
12년 통합진보당의 잠깐의 회복, 그러나 이어진 분당 사태,
12년 대선에서의 재연된 눈물의 사퇴,
16년 총선에서의 기대에 못미친 득표,
17년 대선에서의 기대에 역시 못미친 득표,
18년 빼아픈 노회찬의 상실,
20년 총선에서의 민주당에 뒤통수 쳐맞고 후퇴
22년 대선에서의 이제...

왼쪽 진보에 남은 유일한 후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쪽의 족적을 돌이켜보면 험난하기는 했다.

심상정 개인으로서는, 눈물을 흘리며, 후보단일화를 위한 2번의 자진 사퇴가 이미 있긴 했다.
살아남아서 완주하기도 용이한 환경은 아니어 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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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제는 이 다음 주자, 다음 세대에게 뒤를 맡겨야 될 무렵이 된 듯, 하다, 어느덧.

87년 이후 이 자리에 남아서, 어떻게 클로징을 할 것인가로,
누군가는 이렇게 마지막 장을 쓰고 넘기는 역할을 해야 될 것이다.

그런 마지막 무렵에 그녀가 서 있다고 본다,
백기완 시대의 마지막 후예로서.

안철수 비평하기 - 종횡무진 가로세로 日記

작금의 안철수의 행동, 정치 행위를 표현할 수 있는 적확한 문구: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석변조개(夕變朝改)!


전날까지는 단일화는 이미 결렬되었다고 단언을 하고, 
양당을 싸잡아 비난하며, 이재명이든 윤석렬이든 뽑으면 결국 또 손가락 자르고 싶게 되고 또 지금껏 그렇게 손가락을 잘라왔기에 이젠 자를 손가락도 남아있지 않다고... 
그렇게 열변을 토하더니...
갑자기 다음날부터 윤석렬을 지지하고, 
또 그 이후 윤석렬을 당선시켜달라고 열심히 뛰어 다닌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

대중들 앞에서 그렇게 소리치며 떠들던 자신의 말을 되돌려 들어보면, 창피하지 않나...?
몇 달 혹은 몇 주 전도 아니고, 바로 어제 그제 전의 말을 이리 간단히도 뒤집어버리면.. 요건 몰랐지 하며, 깜짝 놀래켜주려 했던 거였나.
 
뭐 정치한다고 뛰어든지 벌써 훌쩍 10년이니, 창피 따위에야 감각 세포가 없어진지 오래된 완연한 정치인이 다 되었을 것.
그러니 저러지. 완숙미, 그게 들면 새정치고 나발이니고 헌 정치 다 되었다는 얘기이기도.

정치신인들은 물론, 지금껏 헌 정치인치고 새정치 외치지 않은 이가 있었겠는지.
모든 정치인들이 새정치한다고 떠벌리기는 한다, 어느 정신나간 이가 저는 헌정치할래요 하겠는가?

그의 새정치는, 많은 이들이 숱하게 읊어대고 하던 새정치와 대체 뭐가 다른 거였던 거였나, 신인이었다는 것 말고는. 이젠 신인도 아닌데...
이인제가 떠들던 새정치, 박찬종의 새정치, 박근혜의 새로 거듭나겠다며 한나라당에서 간판 바꾼 새누리당, 김대중 시절의 새정치국민회의, 심지어는 김영삼의 신한국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다 지들 정치는 새거라고 한다.
시점상, 뭘하든 자신들이 하는 행동은 이제 벌어질 일이니, 모든 행위가 새거이기는 하겠다.
그 수준의 새정치 아니었을까?

그의 새정치는, 새(鳥)된 정치, (옆길로) 새(脫)는 정치?



앞으로 내가 뭘 할지 저도 잘 몰라요.

그토록 강조하던 자신의 진심을 자신은 알까?
진심이 아닌 이가 누구였나, 모든 정치인은 권력을 향해, 목적 쟁취를 위해 모두가 진심이어 왔다.
심지어 노태우 마저도 이 사람 정말 믿어주세요 하며, 잘해보겠다며 당선시켜 달라며, 포장하는데는 진심으로 노력하는 모습이었겠다.
그의 진심은, 노태우 보다도 애닲지는 않아도, 그래도 선한 더 나은 것일까.

그가 거짓말에 익숙한 정치인들과는 태도는 그래도 좀 달라 보이기는--어리숙해 보여서-- 하겠는데,
그럼에도 어제와 오늘의 말이 이렇게 달라 버리면,
자신이 하는 지금의 말을 남들이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지.

이 사람 믿어주세요, 이거 노태우의 익숙한 멘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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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물건 사면, 알맹이 보다 포장이 더 거하게 온다.
자그마한 알맹이를 감싸서 보다 비싸게 받아내기 위해서 포장에 포장을 더해서 온갖 정성을 겉에 바른다.
900원짜리 포장을 1000원에 사며 100원 짜리 알맹이를 보상으로 받는 느낌이다.

믿을 게 별로 없을 때 표현과 어조에 더 힘줘서 얘기한다.
알맹이 심지가 꽉차지 않으면 포장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일단 팔리게는 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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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부터, 안철수의 속마음은, 단일화해줄테니 모양새 좀 갖춰서 폼 좀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계속 해왔던 셈인데--그렇게 많이들 읽어왔듯--, 사람말 못알아 듣는 머리 나쁜, 혹은 사람말 알아 들어서 나쁘게 머리를 굴린 이준석이, 그 이후의 당 또는 자신의 입지 영역에 대한 계산으로 가격 후려칠 궁리에 혈안이 되면서, 그렇게 끌고 왔던 듯. 소기의 성취에 이준석은 만족할까, 다음 스텦의 부푼 꿈을 그려도 볼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소외감으로 후달리고 있을까. 당선된다면, 윤석렬이 생각하게 될 것중 하나야, 뭐 토사구팽.


[뉴스 비평] “팔 자르는 심정으로 이재명 뽑아요” 심상정 포기한 이대녀 - 종횡무진 가로세로 日記




얼마 전, 이데일리의 기사 하나.

최종 기사 제목은 <이대녀들이 '팔 자르는 심정'으로 이재명에 투표하는 이유>로 바꿨나 봄. 
제목이 좀 덜 직설적으로 보이게 하려 했나.

인턴 기자인 것 같은데,
내 보기엔, 마무리 봐도, 글의 맥락으로 훑어 보건대 기사 제목이 기자의 본심인 것 같다.
즉, 기자가 이재명 지지자로 봐도 무방할 기사.

마치 남 얘기 옮기듯, 진짜 인터뷰이의 말을 옮긴 거라고 하더라도, 기자는 수많은 인터뷰들 중 취사선택해서 자기 기사를 쓴다. 자기 구미에 맞게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허구 인터뷰는 아니라 하더라도, 인용구를 활용하여 구미에 맞는 얘기를 옮길 수 있을텐데, 그런 모습처럼 보인다.
조중동 기자들의 정치 행위, 혹은 모든 기자들의 정치 행위중, 간접적이지만 그러나 직설적인 정치 행위의 방편일테다.
그나마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는 기자라면, 반대편의 의견--가령, 이 기사의 경우, "그럼에도 이재명 안찍어요"--도 같이 실었을 수도 있을텐데, 보통 그런 기사는 별로 본 적이 없기도 하다. 우선 귀찮을테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일테고.




진중권 이해하기 - 종횡무진 가로세로 日記

진중권 이해하기보다는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중권 넘겨집기 정도가 되겠다.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바도 없고,
딱히 그의 책을 깊게 본 것도 아니고,
방송이나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비춰지는 그의 말이나 소식 등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니 넘겨집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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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진중권이 이상해졌다고,
바뀌었다고 얘기들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진중권은 바뀐 적이 없고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좀 늙어가 보이기는 한다.

한 달 전인가, 국민의당 초빙 단상에서,
조국과 사회주의를 얘기하면서
눈물을 잠시 글썽였던 모양인데,
한 편으론 젊어서의 이상에 대한 감상이나 감회는
아직 마음 한 켠으로는 버리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론 늙어서였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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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단서를 멋대로 뽑자면,
다소 뚱딴지 같지만,
주체사상이다.

80년대, 진중권이 존재해 있었을 법한 그 당대는
주체사상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을 때다.
운동권 내는, 주체사상 문제가 치열한 논쟁거리중의 하나였을텐데,
반대파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반대로 주체사상파로 추궁받는 쪽은 자신들은 주체사상이 아닌
사람 중심의 자주적 세계관으로, 반제국주의 민족주의를 따를 뿐이다,
라는 비슷한 얘기로 얼버무리던 시절이었다.

주체사상에 대해, 철학도 뭣도 아닌 비과학적인 관념론에 불과하다라고
신랄하게 비판을 하며,
운동권내 다수파인 민족해방 계열에 대항하던 것이 소수파였는데,
그것이 진중권의 글이었는지,
진중권이 그러한 류의 글을 썼겠는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궤적을 보면 틀림없이 딱 그러한 모습 그대로 그 당대에 있었을 것이다.

다수파의 허약한 논리체계에 대해 소수파의 무기는 합-이성에 기반한 비판이었다, 스스로는.
아마도 그 때의 진중권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신랄했을 것이다.


두번째 단서는,
앞의 단서와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 즈음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사이 그 언저리일 것 같은데,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진보진영내 두 계열,
곧 NL-PD 간의 통합 속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반대하고 탈당한 것이 진중권이었다.
그 때의 그의 일갈이야 자세히 잘 기억 안나지만
(아마 상종하거나 어울려서는 안되는, 진보정치를 망칠 무리 정도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들어오는 무리들에 대한 비판의 수위야 신랄했음은 물론이었을 것이다.
그의 예견이 맞았다고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경기동부연합 등으로 대표되는 그룹들의 패악질(로 일컬어지는 행동들)로
출발하여 민노당은 쪼개지고 만다.
통합진보당에서도 그것은 재연되었다.


세번재 단서는,
디워와 명량에 대한 신랄한 영화평이었다.
대중은 다 괜찮고 봐줘야 하는 영화라고 하는데,
미학이론가 진중권은 애국심 말고는 서사구조 같은 영화적 내용에서는
허접쓰레기(정확한 그의 표현까지는 기억 안나지만 비슷한 수위의 표현)로
볼 이유가 없는 형편없는 영화라고,
비슷하게 얘기했었다.

당시, 진중권은 대중들과 각을 세우고 그들이 무슨 욕을 퍼붓든
대중들의 욕하는 수준과 같은 수준으로 그들과 댓거리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평이 맞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최소한 진중권을 깠었던 수많은 사람들중에
디워를 아직도 옹호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이기도 하지만 옹호하자니 아마 창피해서이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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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단서들로 보자면,
진중권은
사람이 이상하게 바뀐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결 같은 자세로
계속 자신의 관점과 위치를 지켜오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다수파이든, 다수에게 설득력을 가지든, 대중 다수이든,
스스로에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패거리를 짓고, 패거리의 힘에 기반해 그럴 듯함을 포장하는 이를 아마 몹시 혐오하는 것 같다.
그래서, 김어준을 한심하게도 보고, 유시민의 행위를 비판했을 것도 같다.


자한당, 통합당을 두고서
왜 같은 진영에 총질을 해대냐고
욕하는 사람들이 염두해야 될 부분은,
진중권은
지금껏 민주당을 같은 진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설사 필요에 의해 사안에 따라서는, 적의 적은 아군이다라고 양보할지라도
그러면서 내부의 모순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두둔하는 것을 오히려 극도로 혐오할 사람이다.

아닌 것은 아닌 거다.
그것이 놓지 말아야 할
탁월한 비판가 그대로의 자세이다.
타고난 좌파이고, 좌파라면 이래야 하기도 한다.

유시민과의 차별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대중들의 목소리를 많이 모아가면서 힘을 만들고
지향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려 기획하는 자세,
유시민의 그것은 비평가라기 보다는
타협을 기본으로 한다고 하는 정치인의 자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이 사회주의자였던 적이 없는 줄곧 자유주의자였다고 한다면,
진중권은 사회주의자로서의 이상을 추구했던 그 마음을 한 켠에는 계속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에 칼을 채워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곤장맞고 유배가는 자세,
그것은 선비적 풍모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언어가 선비의 언어는 아닌
대중의 수준에 딱 맞는 저잣거리 언어 정도이긴 하지만,
한결같은 지조는 선비적이다.

의도된 캐릭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비호감 오버쟁이 논쟁가의 모습이긴 해도,
학자로서 이론가로서의 기본 양심을
져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 목에 누가 칼을 들이대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두 손 빌고 항복할 것이다.
일단 살아야 된다는 본능이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꿋꿋이 지키며 걸으려 하는 이가 있다면
그를 최소한 응원은 해야 할 것 같고,
그게 아니라도 인정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 건전하다면,
비판에 유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주체, 수령관 속 존엄도 아닐테니.

조그만 티끌 정도의 흠결에 대한 부당한 비판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조그만 비판의 틈도 도무지 내주고 싶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닌지
진중권의 시선을 통해 그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코로나와 노벨 평화상 - 종횡무진 가로세로 日記

상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다.

이 시점에서 그 외의 얘기는 좀 황당한 얘기이긴 하겠다.

누구든, 상을 받게 되든 아니든,
빨리 이 상황이 종결되었으면 한다.

힘겹게 세계적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 된다고 하면,
그 때 노벨평화상의 한 후보가 되어 마땅한 것은
전세계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진일 것이다.

활동 지원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헌신하여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는 아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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